인터뷰

[청어람-만나다] '아 마음을 받았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 이정우

관리자 ·

2021년을 마무리하며 청어람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과의 인터뷰를 진행해봤어요. 인터뷰는 한 해 동안 튜터나 강사로, 참여자로 함께 하셨던 몇 분께 일상 - 청어람 - 신앙에 관하여 질문을 뽑아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소중한 생각을 나눠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이정우 님의 2021년은 어땠나요? 5글자로 표현해주세요! 그렇게 표현해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천이십일!”

2021년은 정말 비현실적이면서도 너무나 현실적이었던 한 해 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2021년 한 해를 다른 말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이천이십일” 자체가 해를 나타내는 숫자를 넘어서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2021년을 함께 살아가고 버텨낸 모든 분들에게 올해는 정말로 비현실적인 해였을 것 같아요. 굳이 왜 비현실적이었는지 설명드리지 않아도 우리 모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론 저에게는, ‘현실적인' 한해였던 것 같아요. 저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데요. 보통 회사 안에서도 그렇고 회사 밖의 삶도 너무 바쁘고 빨리 돌아가는데,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익숙하던 그런 빠른 삶이 순간 딱 멈춰버린 것 같아요. 그러면서 주위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어요. 가깝게는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면서 주위의 새로운, 아니 계속 있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집 마당에 핀 꽃들이 매일매일 조금씩 바뀌는 것도 눈치채게 되고, 집에 놀러오는 다람쥐가 똑같은 다람쥐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팬데믹 가운데도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아마존의 배달하는 아저씨와, 우체국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와 인사도 나눌 수 있게 되고, 옆집의 이웃을 만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면에서 ‘현실’을 접하게 되었네요. 


  이정우 님에게 청어람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 단어로 표현하면 무엇일까요? 왜 그 단어가 떠오르셨는지도 설명해주세요.

‘마음’입니다. 이번에 <신학책 함께 읽기> 챌린지에 참여했어요. 청어람에서 감사하게도 책 읽기 미션을 다 완수한 사람들에게 몇 권의 책 중 원하는 책을 선물로 주시기로 했어요. 그런데 마침 제가 그 책들을 다 가지고 있어서 밴드 댓글에 "책이 다 있어서 마음만 받겠습니다"라고 대답했거든요. 그런데 청어람의 박현철님이 "저희가 마음까지 드릴 계획은 없었는데...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드려야겠군요"하고 답장을 주셨어요. 혼자 웃다가 곰곰히 생각하는데, 난 박현철님도 만난적이 없고, 멀리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청어람에 가본적이 없는데, 청어람이 참 친근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아 마음을 받았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 한해 청어람에서 어떤 모임들에 참여하셨나요? 어떤 유익이 있었고,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는지 궁금해요. 모임 이후 이정우 님의 생활 혹은 생각이 변화한 부분이 있나요?

팬데믹이 시작하면서 오프라인 모임을 못하니깐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모임이 없을까 찾다가 청어람의 <신학책 함께 읽기> 모임을 발견했어요. 미국에 있으니깐 한국에서 진행되는 모임에 참여하는 것은 원래 생각하지 못했는데, 온라인으로 모임이 진행되어서 감사하게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해 초에 처음 참여해서 여섯 번의 챌린지에 참여하게 되었네요. 가장 유익했던 점은, 혼자서는 읽을 엄두도 못낼, 라면 받침대로만 쓸 것 같은, 두꺼운 벽돌책들을 읽을 수 있게 된 점도 유익한 점으로 꼽을 수 있겠는데, 특별히 유익한 점은 '만남'인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목사님, 신부님, 학생, 군인, 직장인, N잡러 등. 다른 배경을 가진 분들의 다양한 시각을 듣고 배울 수 있는게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모임을 거치면서 계속 만나는 분들이 (물론 글과 댓글로 만나지만) 얼굴도 뵌 적이 없지만, 함께 오래 알았던 것처럼 친근하고 연결되는 경험들이 참 좋았습니다. 개인적인 변화는 이런 유익을 나누려고 또 다른 줌(Zoom) 책 읽기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과 삶의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은 이정우 님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이정우 님께서는 어떤 경계에 서 계신지도 궁금해요.

개인적으로 ‘신앙과 삶의 경계'라는 주제만큼 고민되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꽤 오래전에 이원론과 세속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지금(당시) 무엇이 더 큰 문제인가’하는 세계관 논쟁이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나는데요. 제가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데, 저에게 분명한 것은 지금 ‘외줄타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에요. 신앙과 삶의 경계 속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답을 찾아가고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 길을 만들고 있길 소망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전과 지금이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엔 주위를 둘러볼 겨를이 없었는데 지금은 함께 줄타기를 하는 사람들이 더 보이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을 더 찾게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께서, 이 기독교인들의 줄타기를 ‘영광의 외줄타기'라고 표현하셨던 것이 인상에 남습니다. 제게는 그 줄타기의 공간이 실리콘벨리의 소프트웨어 회사이기도 하고 자녀의 교육을 고민하는 아빠의 자리이기도 한 것 같아요.


청어람의 마음을 받아주신 이정우님과 연결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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